다산 정약용 유적지 찿아서/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 전통적 중농학파, 거중기 발명, 귀향살이 깊은 좌절 -

- 조선후기 실학자, 학문업적 인내와 성실 용기 -

- 정약용 (1762-1836)은, 생전 목민심서,등 500여권 저작 -

경찰일보 김일복 기자=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리 747길, 에서 출생, 정약용은 18세기(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서 4세에 천자문을 익혔고 7세에 한시를 지었으며 10세 이전에 이미 자작시를 모아 삼미집을 편찬할 정도로 어릴적부터 영특하기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생가

이후 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재학하면서 정조에게 인정을 받고, 마지막 과거 시험인 대과에서 합격하여 벼슬길에도 오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중농학파 였다.

대표적 업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학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중기"의 발명과 "수원성"의 건립을 든다.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이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생가 내부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가 한국 최대의 실학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떠올리면 오랜 시간동안 겪어야 했던 귀향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다산 문화의 거리

귀향살이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 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평생을 통하여 중단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탄생한 것이다.

정약용의 사상은 당시 사회가 직면해 있던 본건적 질곡을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학계에서는 그를 실학 사상의집 대성자이자 조선후기 사회가 배출한 대표적 개혁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다.


[경찰일보 김일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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