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를 드높인 신화의 거상 "국정일보 문이주 기자"

입력시간 : 2020-01-14 11:22:12 , 최종수정 : 2020-01-14 18:51:32, 문이주 기자



[국정일보 문이주 기자] 러일전쟁 이듬해인 190591일자 신문에 [본인이 성진항 각국 거류지에 물화 대판매소를 설치하고 상해홍콩해삼위일본 각지의 유명한 주단양목(洋木) 등 상품 물화를 다수 무래(貿來)하고 혹 특약 구입하여 음력 8월부터 개시하고 염가 방매하겠사오니 국내 신상제언(紳商諸彦)은 기만 원 어치라도 익익래구(益益來求)하시기 무방하나이다.....성진항 각국 거류지 대판매주인 최봉준 고백] 이란 기사가 실렸다.

조선 말기에 천만장자우리나라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1890년까지만 해도 조선에는 성냥공장은커녕 양말유리벽돌공장 하나도 없었다. 경인철도가 생긴 것도 1899년에서 1900년 사이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부라 하면 경상도의 장승원장길상, 전라도의 김기중김성수 집안의 김경중처럼 들판에서 수만 석을 거두는 사람을 백만장자로 쳤다.

100년 전 그 당시만 해도 화륜선 한 척이면 하늘을 흔들 정도의 재력을 상징했던 시절에 최봉준은 부산과 인천,홍콩상해일본블라디보스톡까지 취항하여 14백 톤의 준창호로 바다를 주름잡고 다녔다.

최봉준은 상선 준창호의 선주로서 19세기 말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한국민회를 조직하였고, 1906년에는 막대한 재산을 계동학교를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08년에는 [해조신문]을 발간하여 항일정신과 민족정기를 드높였다.

1909년 안중근의사가 대한독립군 중장 자격으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역에서 처형하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 비용을 대고 유족들의 생계비도 남모르게 후원했다.

이처럼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국적을 가졌기 때문이며, 러시아 정부의 막강한 지원세력을 등에 업고,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거상이었기 때문이다.

최봉준은 12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가까운 친척 하나 없자, 혈혈단신 두만강 살얼음을 타고 흘러가는 계절노동자들의 꽁무니를 따라 홀로 국경을 넘어 말도 설고, 풍속도 설고, 얼굴의 생김새까지 생소한 러시아로 흘러갔다.

이미 1870년대나 1980년대 우리나라 함경도 경흥 사람의 상당수가 간도나 러시아까지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에도 왜인들은 부산에서, 청국은 의주에서, 그리고 여진족은 경흥에서 무역을 했다.

‘1894우수리 지방에 한 한국인은 약5천 명 가까이 되었는데, 그들은 한 손에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담뱃대를 들었을 뿐 그 밖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계절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품을 팔아 50루불 쯤 품삯을 받는데 고향으로 갈 때는 그 돈으로 달걀을 사 가지고 가서 큰 이익을 보았다는 것이다.

최봉준은 설원에서 추위와 이리떼에게 죽을 지경에 놓여 있을 때 러시아의 어느 귀족출신 야린스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 인연으로 12세의 최봉준은 야린스키가 73세로 생을 마감할 19살 때까지 야린스키의 양아들 겸 별장지기로 지내게 되었다. 최봉준은 야린스키의 유훈 처세정신 10조를 첩으로 만들어 평생 머리맡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야린스키가 생전에 블라디보스톡의 어느 조그만 상점에 투자했던 주식이 불어나 상당한 돈이 되었는데, 야린스키의 유언에 따라 최봉준의 소유가 되었다는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23세에 별장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러시아 국적을 가진 청년이 되어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야린스키가 남겨준 처세정신 10조와 재산을 바탕으로 점점 큰 장삿꾼으로 성장했다.

1888한러 국경 육지무역이 정식으로 허용되고, 러시아와 함경도의 교역을 하기위해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통역을 하게 되었고, 18세기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발달하여 눈덮힌 시베리아에도 철도가 놓이게 되고, 연해주에는 수개의 사단에 이르는 극동군사령부가 들어옴으로 군수품의 일원인 소고기와 소가죽을 필요로 해서 많은 소가 필요했다.

이때 최봉준은 성진과 원산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생우의 무역권을 쥐고 1901년부터 3년간 원산항에서 러시아로 수출한 소만해도 무려 1만 두에 이르렀는데, 한 마리 값도 무려 38원까지 호가했다고 한다.

조국을 잊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편한 삶을 영위하지 않고 내 회사에 투자한 사람과 고객, 수많은 고용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생명을 주었지만 재물은 주지 않는다. 누구나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빈손으로 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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