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서산 간월암

입력시간 : 2019-12-02 09:52:04 , 최종수정 : 2019-12-02 09:54:50, 전승선 기자





서산 간월암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무학대사의 오도송은 참 간결하다. 깨달음을 얻은 노래이니 맑고 깨끗한 함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건 당연하지 않던가. 서산의 끝자락 간월도에서 바다 위에 뜬 달을 보며 읊은 깨달음의 노래가 적멸한 여름햇살로 내리고 있었다. 저 먼 수평선 너머로 구름은 사라지고 태양은 두텁고 거칠게 내렸다. 아마 깨달음을 얻고 난 무학대사의 그 여름도 이처럼 태양과 대적하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일에 몰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은 암자에서 무학대사의 뒤를 이어 경허가 수행을 하고 만공이 수행에 정진 했다고 하니 고승들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하릴없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경내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바다와 섬과 달은 간월암을 간월암답게 해 주고 있었다. 종교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그것이면 족할지 모를 일이다.

 

7월의 태양은 태안에서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태안 인평리 들판에는 콩들이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콩밭 매는 아낙네의 베적삼이 흠뻑 젖는 여름은 위대하거나 나약했다. 태양과 인간 사이에서 콩은 위대했고 나약한 인간은 삼복더위를 피해 태양 앞에 바로 설 수 없었다. 그렇다. 나약한 인간의 여름을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오십을 훌쩍 지나서야 콩의 일생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어찌하다가 나는 늦봄에 태안 인평리에서 콩을 심는 일을 도왔다. 일할 줄 모르는 내가 돕는 것이라야 겨우 콩 몇 알 심는 것이 다였지만 그것은 내게 아주 큰 경험이며 실존이었다. 콩이라는 위대한 자연과 나라는 나약한 존재는 태안 인평리에서 봄과 여름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태안 인평리에서 지글거리는 여름 태양을 뒤집어쓰고 콩밭 매는 아주머니들의 가지런한 밭고랑을 겸허하게 바라보던 그날은 중복이었다. 무한한 에너지를 품어대던 태양이 잠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소나기가 내렸다. 이 변화무쌍한 여름 앞에서 나는 위대한 콩의 생명을 바라보다가 더 위대한 잡초들의 생명력에 감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너른 밭엔 태양보다 더 질긴 잡초들의 생의 축제가 한창이었고 콩밭 매는 아낙네들의 베적삼이 흠뻑 젖는 여름을 무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여름은 그렇게 콩도 잡초도 콩밭 매는 아낙네도 아무것도 거들 수 없었던 나도 덩달아 위대함으로 무장된 여름이었다.

 

태양 때문이었다. 태양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인평리 콩밭을 슬그머니 나와서 바다를 향해 달렸다. 어디든 달리다 보면 바다가 있을 것 같았다. 태안은 서쪽이고 서쪽은 늘 바다를 사모하고 있지 않던가. 서쪽 바다는 여름에 진보하고 우리들의 위대한 태양은 겨울에 더 팽창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열심히 바다를 향해 달렸다. 바다를 향해 달리는 나를 좇아 따라오던 태양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태양보다 위대한 건 시간이다. 시간은 콩의 일생을 관장하고 나의 일생도 좌지우지한다. 어쩌면 태양의 일생도 시간 앞에선 무기력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 이르지 말라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런가

 

태안을 지나 서산 바닷길을 달려 간월도 입구에 닿았을 때는 썰물 때였다. 제 몸을 드러낸 바다가 수평선 끝에서 작은 몸짓으로 일렁이고 있었고 물이 빠져 나간 자리에 아랫도리를 벗은 아이처럼 앉아 있는 간월도는 제 몸보다 큰 간월암을 안고 있었다. 구름은 바다 위에서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며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 부울 것 같았다. 대웅전 처마 끝과 닿아 있는 수평선을 한참 바라보다가 소란스럽게 떠드는 인파속을 뚫고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보일 듯 말 듯한 저 미소를 보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저 미소를 보면 지리멸렬한 우리네 삶은 얼마나 하잘 나위 없는 것인지 자꾸 마음이 약해진다. 부처님의 저 미소를 따라가지 말아야 이번 생에는 인간스럽게 살 수 있지 않던가. 인간스러운 나의 삶을 완성하려면 부처님의 미소를 보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한다.

 

나는 대웅전 부처님의 미소를 뒤로 하고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태양은 찬찬히 스러져 가고 땅거미가 내려오고 있었다. 다시 밀물이 되면 절해고도가 될 간월암의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던 무학대사의 노래가 들려오길 기원했다. 절이 절답지 않고 중이 중답지 않으며 중생이 중생답지 않은 이 시대에 절실한 깨달음의 노래가 그립다. 썰물로도 건널 수 없는 마음속의 간월암이 그립다. 그저 저 바다위에 뜬 고요한 달은 시간의 향기 일뿐인지 모른다. 무학도 바라보았고 나도 바라본 저 달의 시간은 시간 밖의 시간인가. 길 없는 길을 강요하는 시대의 절망 앞에서 인간은 덧없고 인간의 삶은 서사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우주가 그러하듯 자연이 또 그러하듯 그리고 인간이 그러하듯 스스로 사위여 가고 스스로 생성할 것이다. 마치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달이 다시 떠오르고 무학대사의 오도송이 떠오르듯 말이다.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 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 이르지 말라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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