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동그라미'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소재는 동그라미

입력시간 : 2019-12-01 21:30:58 , 최종수정 : 2019-12-01 21:30:58, 권호 기자
<출처: unsplash.com>




[뮤즈: 진영 작가]


<동그라미>


둥글게 살고 싶어졌다.
모나서 못났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된 순간이 있었다
난 그때부터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다.
동그라미가 되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시기가 왔다.

동그라미가 돼보려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두고 배워보겠다는 의지였다.
근거 있는 동그라미 앞에 네모인 나는 자존심을 자연스레 버리고 배우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동그라미가 돼보려는 것은 내가 걸어온 길 만이 길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난 원래 A는 A여야 되고 B는 B여야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A는 A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목표로 향할 때 다양한 길로 걸어본다.

동그라미가 돼 보려는 것은 상대방이 말할 때 끊지 않고 끝까지 들으면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말을 끊고 말한다는 것은 대 놓고 네모가 돼보겠다는 자세인 것 같다.
말을 끝까지 들으면서 엄청 말하고 싶었던 나는 이제 조금 더 편하게 끝까지 듣게 된다.
소통의 시작은 유연한 동그라미가 돼보려는 노력에서 온다.

동그라미가 돼 보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바라보다가 알게 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동그라미가 돼 보려는 것은 나와 다른 것들을 알고 싶어 하는 과정이었다. 내 생각과 다른 것들을 다양하게 접해 보고 싶은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나는 과연 동그라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각져있을까?  

동그라미 인간이 되려고 하다 보니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금은
내가 아는 게 없는 것 같은 강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동그라미 인간이 되어 사람들을 이해해보고 싶다.

동그라미 인간은 사소한 일에 크게 감정적으로 되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를 만든다.
느긋해지고 차분해짐으로써 목표에 다가갈 때의 불안감을 이기는 데 있어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다.




[뮤즈: 유피린 작가]


<우로보로스 클럽>

“오륜기

밤하늘에 동그라미.
선으로 깃발을 그린다.
너도 이 깃발을 봤을까?

귀를 닫으며 기울인다.
들리지 않았던
펄럭 소리가 들린다.

우르릉 우르릉
동그라미의 펄럭 소리
어지러워 귀를 열었다.

뿔이 난 동그라미의
화난 소리.
너는 이해 못했지.

네가 알려준
밤하늘에 깃발을
내가 몰랐던 것처럼.”

작은 동아리 방에서 조용히 자작시를 낭독한 리애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떠냐는 표정을 지었다.
“잘 들었어.”
“뭐야. 소감이 고작 그거뿐이야?”
“와, 대단합니다. 남리애 님. 당신이야 말로 이 시대의 시인입니다.”
침묵이 유지되던 동아리 방의 정적을 깨뜨린 연성은 리애의 날카로운 시선에 국어책을 읽듯이 칭찬했다.
“비평할 것 있으면 비평하지 그래?”
“……아니 없어. 잘 들었어.”
일부러 리애의 시선을 피하며 연성은 고개를 돌렸다.
“뭐야? 동아리 규정 때문에 그래?”
“아니 그건 아니야. 할 때는 해야지.”
연성이 다른 회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하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로보로스 클럽.
동아리 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지만, 이 대학에서 대부분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는 문예창작 동아리다.
존재감이 없는 동아리답게 동아리의 인원은 회장을 포함해서 다섯 명뿐이다.
문예 창작 동아리답게 주 활동은 역시 문예 창작이다. 인원도 적고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동아리이지만 의외로 이 대학에서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가진 동아리로 꼽힌다.
현재는 아니지만 선배들이 꽤나 많은 공모전이나 대회에서 상을 휩쓸기도 했던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동아리는 인문계 학과의 문예 창작 동아리와 앙숙 관계다. 대학 내에서도 찾기 힘든 것이 문인인데, 그런 문인끼리 앙숙이라는 것은 이상하지만 이 동아리의 창설 배경에 있다.
바로 ‘버릴 작품은 없다.’라는 동아리 기조가 그 창설 배경이다.
대학에 있는 기존 문예 창작 동아리는 교수들의 입김이 강해서 신랄하게 까는 기조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멋모르는 새내기들이 의욕만 앞세워서 창작했다가 신랄한 비평을 듣고 펜을 꺾은 경우가 속출했다.
그런 비평의 기조에 반대해서 설립된 것이 바로 우로보로스 클럽이다. 거기에 기존 인문계 동아리를 탈피해서 이공계 등 학과를 가리지 않고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흡수했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인문계 동아리보다 더 덩치가 크기도 했던 동아리다.
하지만 지금은 잘 나가는 사람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글을 써오는 동아리가 되었다.
‘그나마 창작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것이 지금 동아리 회장이 현재 회원들을 보고 했던 말이다. 그 정도로 한때는 대학의 대표 동아리라고 할 수 있던 우로보로스 클럽은 몰락했다.
“그러면 그러지 말고 비평 좀 해줘. 비평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잖아.”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리애의 조르는 말에 조용히 있던 시은이 입을 열었다. 시은의 한 마디에 처음에 입을 열었던 연성도, 눈치를 보고 있던 신우도 슬슬 입에 발동이 걸렸다.
“제목이 오륜기인데 동그라미 이외에는 연상되는 것이 하나도 없지.”
“뿔이 난 동그라미의 화난 소리도 이해 안 돼.”
“애당초 귀를 닫고서 기울였다는 것은 뭐야?”
가장 거슬렸던 부분에 대하여 다들 한 마디씩 하자, 리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쓴다고 한 것인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네.”
“……그렇게 둘러대지 말고 좀 설명을 해봐, 도대체 뭔 소리야?”
풀이 죽은 리애에게 시은이 되묻자, 리애는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시를 설명하라니! 무슨 이과도 아니고! 시는 감성이라고 감성! 설명서가 들어가는 제품이 아니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설마 오륜기라고 깃발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지?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의 상징은 도대체 왜 가져온 거야?”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리애는 제대로 기가 죽었다. 쓸 때는 이번에는 인생의 역작이라고 생각하며 썼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라 할 수 있는 동아리 회원들의 반응에 침울해졌다.
“……됐어. 다음에 제대로 써올게.”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이 실패작을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거야 말로 동아리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금기였기에 피했다.
“후우, 좀 자유로운 분위기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 되는 걸까?”
풀이 죽은 리애의 모습에 연성, 신우, 시은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봤다. 한 때는 이공계도 가리지 않고 받으며 자유로운 창작을 했고, 수많은 공모전을 휩쓴 동아리 우로보로스 클럽.
하지만 이제는 인문계 동아리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인간들의 마지막 도피처가 된 신세다. 그런 만큼 그들의 자존감은 한 없이 낮다. 그저 창작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붙어있을 뿐이다.
“……미안 내가 조금 늦었지?”
“……아니요.”
리애의 풀이 죽은 모습에 다들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며 풀이 죽어있는데, 동아리 회장인 사윤이 들어왔다.
“오늘따라 회의가 길어져서 늦어버렸어. 아. 리애가 지은 시는 읽어봤어. 좋은데?”
동아리 연합 회의에 갔다 온 사윤이 들어오자마자 리애가 올린 시를 평가하듯이 말하자, 다들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들 부족한 부분을 비평했는데, 사윤만은 들어와서 칭찬한다.
“동그라미가 그린 깃발. 그거 별자리지? 그리고 별표라고 하지만 결국 별은 동그란 항성이잖아? 동그라미가 그려진 깃발. 그래서 오륜기이고―”
줄줄 이어지는 사윤의 칭찬에 리애는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사윤은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 작품을 써오면 단점을 보면서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찾아서 칭찬했다.
그것이 우로보로스의 방식이라면서.
우로보로스는 머리가 꼬리를 문 동그란 뱀이다. 영원과 순환을 상징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문예 창작 동아리에 왜 그런 상징을 쓸까 했지만 처음에 동아리를 만든 선배들은

‘우로보로스 클럽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이지만 
동시에 글을 읽는 독자이며 
글을 평가하는 비평가다.’

라는 글이 적힌 액자를 남겨서 그 의미를 새겨놨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우로보로스 클럽 동아리실 벽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동그라미가 그려진 채로 붙어있다.
“……그래서 오늘도 좋은 작품이었어.”
동아리 실의 프린터로 리애의 시. ‘오륜기’를 출력한 사윤은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고서 벽에 붙였다.
그 동그라미가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 같아서 리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뮤즈: Bee 작가]


<매듭>

직물로 짠 식탁보를 깝니다
그 주위에 둘러앉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이야기를 떼면
공을 주고
공을 받고
결국은 땅에 떨어집니다.

떨어진 것을 주웠습니다
떨어질 때와 주운 때는 다릅니다
어쩐지 한쪽이 이지러졌습니다.

다시 줍니다, 받습니다, 건네었어요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는
그러니까 그래야만 하는

얼룩이 진 천은 뒤집어 덮었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보지 않았습니다.




[뮤즈: whee 작가]


지금을 아침이라고 해야 할까 밤이라고 해야 할까.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선다. 싸늘한 새벽 공기에 옷깃을 한번 더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버스정거장을 향한다. 주홍빛 가로등이 마치 노을 같은데, 나는 또 하루를 시작한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아마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캄캄한 시간부터 어디를 가는 걸까. 무얼 하기 위해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섰을까. 버스정거장에는 캐리어를 든 중년의 남자와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노년의 남자, 두 명이 더 있다. 
 눈길을 버스 정보 안내판으로 돌린다. 곧 도착. 다행히 내가 탈 버스는 기다릴 필요도 없이 모습을 보인다. 괜스레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서 버스가 정차하도록 유도하고는 목례 후 버스에 올라탄다.
 [1250원 조조할인]
새삼 많이 오른 버스비가 눈에 밟힌다. 조조 영화는 생각조차 않는데, 그보다 이른 시간에도 출근을 하겠다며 버스를 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유리창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중략)

오늘도 야근은 확정이다. 창 밖에 붉게 지는 노을이 마치 아침 일출 같다. 곧 해가지고, 다시 주홍빛 가로등이 켜지면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잠시 들었던 고개를 다시 모니터로 돌리며 어제와 내일의 경계가 모호한 오늘을 다시 이어간다. 퇴근 후 다시 오를 순환 버스의 궤적처럼, 동그랗게.




[뮤즈: 심즈 작가]


<동그라미 그리기>

동그라미는 꿈이 있다.
네모처럼 평평한 면을 이용해서 바닥에 고정되고 싶기도 했고, 세모처럼 뾰족한 끝을 이용해 종이에 구멍을 뚫어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끊임없이 굴러다닐 뿐, 바닥에 고정될 수도 없었고 무언가를 찔러볼 수도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굴러다닐 뿐이었다.
동그라미는 그저 외로이 홀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수없이 많은 낮과 밤이 지나고 주변에 다른 동그라미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네모였다가, 세모였다가,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모난 부분이 조금씩 닳으면서 그들도 결국 동그라미가 되었다.
처음의 그 동그라미도, 기억하지 못할 먼 옛날 세모였고 네모였지만 세월이 지나 동그라미가 되었듯이, 다른 이들도 세월이 지나 그와 같이 동그라미가 되었다.

동그라미는 네모 세모로 각져있던 나를, 긴 세월이 조금씩 조각해서 만든, 나의 아픔과 반성이 만들어낸 새로운 나의 마음이었다.




[뮤즈: 정진우 작가]


<점>

푸른색 비단 위
남색의 점이 보인다
흰 그림자 넘실댄다 

둥글다

세상 모든 이름들

모두가 점이라 

그들의 숨은 언제나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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